다다이즘과 네오다다 by 근지




 아무 뜻도 없는 '다다'라는 이름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중립국인 스위스로 피난 온 예술가들 사이에서 생겨났다.
 제 1차 세계대전을 겪게 되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는 인간이 가진 이성과 도덕성,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을 통해 미래에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게 될 것이라는 유토피아적인 기대가 무너지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다다이스트들이 인간의 이성과 기성의 모든 것들을 불신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따라서 그들은 권위적인 것들과 불합리한 문명에서 나온 모든 것들을 거부하고 반이성, 반도덕, 반종교, 반자연, 반예술을 주장하였다. 다다이즘은 철저하게 기존의 사회, 예술, 종교, 정치 등 모든 것에 '아니오'를 외치면서 각 사람들의 정신적 해방과 개인적 욕구를 표현했다. 따라서 다다이즘은 예술의 일정한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들을 파괴하고 부정하던 당시의 예술, 사회적인 태도를 일컫는다. 


 다다이즘의 대표적인 작가 뒤샹은 가시적인 '결과물로의 회화보다는 순수한 상상력으로 창조되는 미술'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뒤샹은 참가비를 내고 참여하는 전시회에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햇다가 전시를 거부당하게 된다. 뒤샹은 이미 만들어진(ready-made) 변기를 오브제로 선택함으로써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에 새로운 의미와 시각을 불어넣고자 하였다. 뒤샹에 의해 선택된 변기는 더 이상 변기가 아니라 "샘"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이었다. 뒤샹은 많은 작가들에게 미술을 형태와 재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개념과 의미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주었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준 뒤샹은 후에 개념미술에 영향을 끼쳣다. 또한 뒤샹은 예술이란 어려운 것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ㅇ누리에게 새로운 시각적인 방법을 제시하여 고정관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네오다다는 명칭 때문에 흔히 다다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다 운동이 기성 가치의 부정을 목적으로 시종일관 파괴와 반항을 보여준데 반해서, 네오다다는 현실에 대한 긍정으로부터 출발한다. 형식적인 새로움을 위해, 또한 조형적 소재로서 당시의 물질문화를 그대로 작품에 수용했다.

 현실 세계의 단편인 오브제는 현실 세계에서의 실용적인 의미 및 역할을 읽어버리고, 단순히 조형적인 소재로서 작품 속에 끼어들어온다. 게다가 이들 오브제는 외견상으로는 현실적인 모습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회적 본재의 잔해로서 보는 이 앞에 놓이게 된다. 한 때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을 억지로 본래의 장소에서 단절시킴으로써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혼란시키고, 새로운 가치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네오다다의 대표적인 작가 재스퍼 존스와 라우센 버그가 있다. 먼저 재스퍼 존스는 실물의 재현이나, 어려운 정신 세계의 표현보다는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이 오로지 그 자체로 하나의 사물로만 보이도록 중성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재스퍼 존스가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국기, 과녁, 지도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미지들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의 외형, 외적 그 자체를 강조하였다. 재스퍼 존스는 현실 세계의 소재와 일상생활을 표현하며 단순한 기하 형태가 아닌 새롭게 이어지는 사물과 형식의 반복 속에서 과거 작품을 인용하며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라우센 버그는 그의 유명한 제작 기법 "컴파인 페인팅"으로 유명하다. 컴바인 페인팅이란 칠하거나 그리거나 설계하는 조각하는 방법 대신 모으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원래 예술적 재료가 아닌 자연적 재료나 대량 생산된 재료로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의 작품 '침대'는 하나의 캔버스에 그림과 물건(낡은 매트리스, 사진, 동물)을 결합해 놓았다. 라우센 버그는 더 이상 그림과 조각을 구별하지 않고 둘을 합쳐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런 독특한 표현법은 팝아트의 시초가 된다. 



 

야수파와 입체파 by 근지


 
 이번 학기에 현대미술의 이해라는 과목을 들었는데, 정말 내가 들은 과목 중 가장 베스트다!!
일주일에 한번 들은 수업이였지만, 갈 때마다 정말 내 머릿속에 미술에 대한 지식이 쏙쏙 들어오는 수업!!
이제 못 듣는 것이 아쉽지만, 기말 고사로 내 주었던 문제를 다시 정리하는 겸 남겨 본다.
중간고사도 이렇게 남길껄... 아깝고 아쉽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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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파리에서 야수파 전시회가 열리던 날은 미술사에서 매우 중대한 전환점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이후부터 예술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변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하늘은 푸른색이고 잔디는 초록색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야수파들의 화폭에서는 하늘이 겨자 같은 노란색이었고, 나무는 토마토 같은 붉은색이었으며, 사람의 얼굴이 완두콩 같은 연두색으로 그려졌다. 야수주의란 명칭은 그들의 그림을 보고 경악한 비평가가 "야수의 무리 속에서 갇혀있는 도나텔로 같다"라고 비꼰데서 나왔다. 다른 비평가들도 또한 '광란하는 미치광이' '추한 세계' 라는 등의 혹평을 퍼부었다. 


 야수주의 화가들은 모두 강렬하고 과장된 색체에 취해 있었다. 그들은 대상을 묘사하는 데 쓰이는 전통적인 색체 사용법에 해방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색체를 사용했다. 야수파는 후기 인상주의의 고상한 색채의 대비와 깊이 있는 정서적인 표현을 결합시키면서 발전되었다. 즉, 색채가 이미 자연의 재현 수단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동, 사념의 표현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색채의 강렬함이므로 색조의 순도를 살리기 위해 깊이의 공간 표현(명암, 양감)을 가능한 생략하며 배경도 대상과 동일한 강도의 색채를 쓴다. 이러한 방법은 회화의 평면성에로 복귀, 장식성의 강조를 초래하며 공간을 오로지 색채에 의해 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수파의 대표적인 화가 마티스는 야수주의 풍경화부터 말념의 색종이 작업에 이르기까지 일괄되게 밝은 색채를 추구했다. 그는 "색채는 결코 우리가 자연을 모방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색상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스케치들은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특이한 것에서 보편적으로 이행되어 가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스케치가 되풀이 될수록 복잡한 세부를 제거해 가고 있다. 마티스의 대표적인 그림 "춤"은 즐거움에 넘친 춤 동작을 포착하기 위해 일부러 형태를 단순화 하였고, 색상도 세 가지로 제한하였다. 그는 하늘의 푸르름 중에서 가장 푸른색과 땅의 녹색 중에서도 제일의 녹생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비재현적인 색채 사용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 후 야수파 화가들은 점차적으로 세잔이 강조한 내부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은 입체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입체파란 20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성행하였다. 마티스가 '조그만 입체 덩어리'라고 말한데서 온 것이다. 대상을 원통, 구, 원추 등의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해하여 주관에 의하여 재구성하여 입체적으로 여러 방향에서 본 상태를 평면적으로 한 화면에 구상하여 표현한 것을 말한다. 입체파의 그림들은 일반적인 공간을 분리시키고 그 공간 간의 간격을 새롭게 배치함으로써 평범한 공간을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므로 입체파 그림에서 가볍고 짙은 그늘 사이의 간격의 배치는 매우 중요하다. 이 공간 사이의 그늘로 만들어진 경계선의 배치는 우리 눈이 미세하게 떨리며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입체파의 대표적 화가 피카소는 원시 미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로 그는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얼굴이나 사물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이전의 화가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피카소는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이전의 화가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피카소는 평면성을 피하면서도 사물을 단순하게 그리고 동시에 입체감과 깊이감을 유지하는 그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그는 세잔의 기하학적인 패턴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 입체파의 전조 "아비뇽의 아가씨들"은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수고 있다. 다섯 명의 여자들을 보면 눈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거나 귀가 변형되어 있거나 해부학적으로 엉망이다. 또한 원근법도 파괴하여 공간을 들쑥날쑥한 면들로 분할하였다. 피카소는 그림에 대해서 "화가의 연구는 실험적이다. 그것이 새로운 창조이며 발명이다"라고 말했다. 
 입체파 그림들은 즐거움 보다는 창조에 가깝다. 새로운 구조에 의해서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고 그림을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움 관점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색채는 사물의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며 모양은 더 이상 자연물에 의해서 일정하게 제한되지 않는다. 입체파 그림의 본질은 사물을 한 가지 고정된 시점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사물을 여러 가지 각도와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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